【사천=뉴시스】문병기 기자 =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아파도 제대로 된 진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 간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삼천포서울병원에 따르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떨어진 톤도마닐라시티는 수도인 마닐라의 외곽도시임에도 빈민가나 다름없다.
주변엔 온통 쓰레기더미와 썩은 물에서 숨쉬기 조차 어려울 만큼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와 해충들이 들끓는다.
한 눈에 봐도 몸도 가누기 힘든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동물이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은 과연 이곳이 한 나라의 수도인 지를 의심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진에 따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검게 탄 얼굴, 깡 마른 체형에 바람이 불면 곧 날아갈 것 같은 나약함, 에너지라곤 없어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그러나 누구하나 불만을 얘기하는 이가 없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 가지 소원은 있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는 온갖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대로된 진료나 약 한번 먹어보는 것이라 했다.
그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경남 사천시 소재 삼천포서울병원(이사장 이승연)과 필리핀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치유로열매맺는나무의료선교사회(대표 김종명)’가 손을 맞잡고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로 했다.
삼천포서울병원은 지난 15일 선교사회와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기로 하고 내과 등 의료진을 꾸려 지난 15일 2박3일 일정으로 필리핀으로 떠났다.
16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의료봉사에는 삼천포서울병원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종명 선교사 등 치과와 가정의학과 의사, 자원봉사자 등 20여 명이 합류해 톤도마닐라시티에서 무료진료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무료진료를 할 경우 환자를 직접 찾아 다닐 정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사실 걱정이 앞섰다. 찾아오는 사람이 적으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됐지만 진료전 이미 그곳은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수 백명의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대기표대로 질서정연하게 줄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짜증스러움이나 조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내과와 치과 가정의학과 등에는 시간이 지날 수록 밀려더는 인파로 인해 긴 줄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해서 늘어났다.
진료를 담당한 의사들도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휴식고 갖지 못한 채 환자를 진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많은 환자가 몰려든 삼천포서울병원 정형주 부원장(내과)의 얼굴에도 구슬땀이 흘러 내렸지만 한명의 환자라도 더 진료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는 "해외 의료봉사를 처음 나왔는 데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과 환자들이 안고 있는 각종 질병들에 많이 놀라고 당황스럽다"며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멍해 오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어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제때 진료를 받으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픈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울병원 못지않게 이번 의료봉사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김종명 선교사다. 그는 원래 한국에서 잘나가는 치과의사였지만 7년전 이 곳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왔다가 정착한 사람이다.
그를 이해하고 지금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인의 내조 덕분에 일주일에 한두 번 의료봉사와 음식봉사를 하며 이곳 사람들의 ‘희망이자 은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며 "치아가 썩어도 뽑지를 못하고 배가 아파도 약하나 먹을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6.25 전쟁 때 필리핀은 유엔의 일원으로 참전해 피를 흘렸고 전쟁 이후 한국에 원조를 한 고마운 나라"라며 "지금은 뒤바뀐 현실이지만 우리도 결코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의료봉사에는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1000여 명이 진료를 받고 필요한 약도 받았다. 난생처음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병이 다 나은 듯 편온함이 묻어났다.
이승연 이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해외의료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많은 걸 느꼈고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며 "내년에는 보다 더 철저한 준비과정을 통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과 깊이 고민해 보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이번 해외 의료봉사활동은 필리핀 사람들에겐 꿈과 희망을,병원측엔 사랑의 인술을 펼치며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번 봉사활동에서 삼천포서울병원은 제대로 된 의료장비가 없는 선교회에 최첨단 의료장비를 기증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편 지난 2006년 개원한 이래 지역거점병원을 넘어 해외로의 봉사영역을 넓히고 있는 삼천포서울병원은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 잠수어업인 지정병원, 보훈의료 위탁 지정병원, 도립사천노인전문병원 위탁 운영 등의 정책사업을 수행하며 지역 최고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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